김대중과 재야(在野), 그 끈질긴 50년의 인연


DJ 서거 직후에 기획 중 한 꼭지로 제가 쓴 기사입니다.
당시 이의엽 민주노동당 정책부의장에게 찾아가서 거의 회고를 들려달라고 해놓고, 참고해서 쓴 기사인데요..
지금 보니깐 많이 허접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보성 있는 글이라 이렇게 올립니다.
참고로 전 지금 몸이 너무 아파서 오늘도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ㅜ 머리가 너무 띵하고 어지럽네요 ㅜㅜ
얼른 쾌차하길 빌어주세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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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 http://www.vop.co.kr/A00000264357.html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qwereer@vop.co.kr)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5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야 민주화 세력들에게는 ‘선생’으로 불렸다. 1997년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함께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던 김 전 대통령과 재야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로 변모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군사독재가 민중들을 집어삼켰던 1960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독재의 망령’을 쓰고 맹위를 떨치고 있는 2009년 오늘날 까지 DJ와 재야의 관계는 50여년 간 공조와 대립을 거듭하며 뗄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재야, 그들은 지난 50여 년 간 ‘독재타도’를 한 목소리로 부르짖다가도 경제노선을 놓고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고,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연합했다. 그 끈질긴 50년의 인연을 되짚어 보자.

재야운동의 '상징'이었던 DJ

1958년 당시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처형당하면서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진보당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진보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이를 동력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고자 했던 재야세력들도 혹한기를 맞게 된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 법. 이승만 독재정권하에서 억눌려 있던 학생들은 4.19 혁명을 일으켜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쌓였던 민중의 분노가 분출되면서 재야세력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편 김대중은 61년까지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 출마해 낙선과 당선을 거듭하며 재야 세력들과 관계를 맺어 왔다. 급기야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향토예비군 폐지, 노동자·자본가 공동위원회 구성, 비정치적 남북교류, 한반도 평화를 위한 4대국 안전보장안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대중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주의와 토건주의 경제성장론을 정면에서 공격하며 재야 민주화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대선 당시 미분화 단계에 있던 재야 민주세력들은 김대중을 통해 ‘독재타도’,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박정희가 죽고 ‘서울의 봄’이라 불렸던 1980년 정치적 과도기를 기점으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3김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김대중이 전두환 정권 초기 보복성 사형선고를 받은 뒤, 김대중을 사면복권하라는 운동이 국내외로 광범위하게 일면서 DJ와 재야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말그대로 김대중은 80년대 이후 재야세력의 '정신적 지주'였다.

민주노동당 이의엽 정책부의장은 “당시 김대중은 재야운동의 상징이었다. 운동진영의 정신적 지주, 리더, 진짜 선생님이었다. 사형까지 받아가면서 우리와 한 몸으로 싸웠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87년 이후 일대 전환기를 맞은 DJ와 재야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재야세력들과의 관계에서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전두환 군사정권 이후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발표했다. 이후 김대중은 김영삼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난항을 겪자 통일민주당을 탈당,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당해 독자출마를 선언했다. 이때부터 DJ-재야 간 굳건했던 공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의엽 부의장은 “어떻게든 김영삼과 단일화 해서 노태우가 되는 일을 막았어야했는데, 냉정하게 평가해서 DJ가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재야에서는 "결국 DJ는 민주화에 대한 여망으로 생을 바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이 앞선 사람이었구나"라는 비판도 있었다.

앞서 재야 운동진영은 84년 사회구성체논쟁을 계기로 의견대립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 진보진영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NL(자주파)과 PD(평등파)의 시초였던 것이다. 이후 심화된 갈등은 87년 대선 당시 직선제 개헌 바람을 타고 3개 분파로 분리됐다.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비판적지지파’, 김영삼과 단일화하기를 원하는 ‘후보단일화파’, 재야진영 독자출마를 주장하는 ‘독자후보파’로 나뉘게 된 것이다. 당시 재야 세력 중에는 김영삼을 지지하는 극소수 세력도 있긴 했으나 곧 소멸됐다.

당시 ‘다수파’는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탈피라는 당면 과제를 우선 해결하려면 연대·연합을 해야한다는 성향이 강해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을 지지했다. 반면 '소수파'는 독자적 계급대표성을 가지는 지도자를 지지해야한다며 백기완 선생을 대선후보로 추대했다. 그러나 87년 대선 결과 김대중은 노태우, 김영삼에 이어 3위에 그쳐 패배의 쓴 잔을 맛봐야 했다.

김대중은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선 당시 재야세력 중 ‘비판적지지파’였던 임채정, 이해찬 등을 중심으로 평민련이 결성되고, 김대중은 이들을 평민당으로 입당시켜 제1야당으로 도약한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은 1992년 대선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당시 재야 세력의 ‘다수파’들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을 견지하며 하며 표를 몰아줬으나, 김영삼이 당선되자 김대중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97년 DJP 연합..멀어지기 시작한 DJ와 재야

영국으로 간 지 6개월여 만에 돌아온 김대중은 일부 재야세력 및 종교 인사들과 함께 국민회의를 창설,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이 때 재야 세력 다수는 김대중의 정계복귀를 두고 “권력에 대한 과욕”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1997년 대선을 기점으로 DJ와 재야 다수 세력 간의 간극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김대중은 김종필, 박태준과 함께 DJP연합을 이룬다. 이 모습을 본 재야는 “군사독재정권의 잔당과 연합한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마침 재야에선 90년대 초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창설되면서 전국적 현장 대중조직이 확장됐고, 이들 조직기반을 바탕으로 재야 ‘다수파’는 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창당, 권영길(당시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을 독자 후보로 추대했다. 독자출마가 가능했던 것은 민주노총과 전농이라는 대규모 조직이 생기면서 현장출신, 기층출신 중심으로 재야세력의 틀이 다시 잡혔기 때문이다.

권영길을 필두로 한 국민승리21은 대선에서 1.9%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지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는 성공했다. 반면 나머지 ‘소수파’로 남아있던 이른바 ‘명망가’라 불리는 재야운동가들은 대부분 국민회의로 흡수됐다.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재야 인사들은 98년부터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원탁회의를 만들었고, 99년에는 '민주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이때부터 재야는 정치적 안착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DJ 집권..신자유주의 VS 반신자유주의

김대중이 집권하고 나서부터 DJ-재야 간 관계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로 명확히 갈리게 됐다.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하에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추종자’란 비판까지 받으면서도 김대중은 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 대량 양산,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이어갔고, DJ와 진보진영은 대립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과 진보진영은 경제노선,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문제 등을 놓고 서로 치고 받았으나 항상 대립각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은 통일운동세력 가운데 중도적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공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등 급진적인 통일단체들의 활동도 많은 부분 용인됐다. 결국 김대중과 민간 통일운동단체들의 꾸준한 활동의 성과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졌다.

김대중은 이처럼 집권기간 내내 진보세력과 대립과 공조를 거듭하는 ‘애증의 관계’였다.

‘반독재 투사’의 모습으로 돌아오다

노무현 정권을 거쳐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정권 초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섰다. 이 정권은 촛불조차 용납하지 못했다.

2009년 초 용산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타 죽은 사건을 계기로 87년 이후 22년 만에 야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장외 집회가 열렸다.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22년 전 6월 항쟁의 모습이 재현되는 듯 했다.

이어 택배 노동자 고 박종태 열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례로 정권의 희생양이 됐다. 김대중은 이를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에 저항하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며 담벼락을 쳐다보면서 욕이라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중은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관계의 위기가 심화됐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친일, 군사독재의 줄기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미 독재 정권을 좌절시켰다. 그 누구도 독재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의엽 부의장은 "민생민주와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되면서 한국사회가 과거로 회귀하고,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후퇴하는 걸 보면서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한 것이다. DJ와 재야가 반독재 투쟁 전선에서 다시 접점이 만들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독재'에 맞서기 위해 김대중이 제시한 무기는 '연합'이었다.

지난해 말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만난 DJ는 “앞장서서 외치는 사람, 길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굳건하게 손을 잡고 시민사회단체 등과 손을 잡고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대중이 서거하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시민사회단체는 이제 DJ의 '유훈'을 받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군사독재에 맞선 DJ와 재야의 연합이 2009년 MB 정권에서 닮은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 보금자리 주택 글로바꾸는세상1

기사 원문 : http://www.vop.co.kr/2009/12/10/A00000274677.html

강경훈 기자

올해 상반기에 시범지구를 선정한 후 2012년 하반기 첫 입주가 예정된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명목으로 추진하는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다. 정부는 향후 2018년까지 보금자리주택 제도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150만호를 서민들에게 공급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 중 판자촌과 비닐하우스 등이 형성돼 있던 그린벨트 내 보금자리주택 32만 가구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으로 앞당기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방침은 결국 부동산 가수요만 잔뜩 부풀려 결국 공급된 주택은 매매용, 투자용 주택으로 전락할 것이고, 이는 서민 보금자리 마련이라는 기존의 의도는 무색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한 주택 150만호 중 절반에 가까운 70만호가 임대주택이 아닌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양주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분양주택 중에서도 중대형 평형을 늘리겠다고까지 하고 있다.

이 같은 짐작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최근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제도가 발표된 시점을 전후로 형성되고 있는 '주택대란'의 실체가 미비한 수준이라는 주장들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측에 따르면 지나치게 높은 집값 때문에 유효 수요가 부족해 공급이 넘쳐나고 있고, 이 같은 공급과잉 압력을 이기지 못해 실거래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투기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 투기가수요가 만들어 질 텐데, (보금자리주택은) 투기 조장책일 뿐"이라며 "정부는 말로는 서민 주거대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사실상 '판교 로또' 사태가 재연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주거대책으로 내놓은 보금자리주택은 결국 투기조장책일 뿐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보금자리주택 분양가 역시 3~4억원에 달해 친서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주거대책으로 내놓은 보금자리주택은 결국 투기조장책일 뿐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보금자리주택 분양가 역시 3~4억원에 달해 친서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 분양가 역시 '친서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는 서울 강남 세곡과 서초 우면에 건설 중인 26평형 보금자리주택을 평당 1,150만원으로 책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광수경제연구소 측은 "인근 강남 지역의 평당 주택가격에 비해 반값 정도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서 공급한다는 점에서는 실제 원가구조를 따져보면 매우 높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또 "신혼부부 대부분이 여유가 없어 전월세에서부터 가정을 시작하는 데도 불구하고 분양주택을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전혀 무시한 처사"라며 "저렴하게 분양한다고 해도 3~4억원 정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신혼부부가 어디서 그런 큰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더군다나 정부가 주택공급 부족문제를 조기에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분양계획을 앞당긴 탓에 이정도 수준의 분양가 마저도 더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측은 "주택공급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토지보상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판교신도시를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정부가 판교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초기에는 분양가를 평당 800~900만원 수준으로 거론했지만, 결국 투기가 과열돼 1,200만원 대까지 상승했었다.

더불어 조기 분양을 위해 단기간에 엄청난 보상비가 풀릴 경우 주위 부동산을 자극해 부동산 거품 현상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취임 직후 '강남북 균형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했던 은평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임기 내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공사에 속도를 냈고,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반발을 불식시키기 위해 시공사인 SH공사는 토지보상비를 과도하게 집행했다. 당시 은평 뉴타운에 인접한 서대문구와 은평구 일대 700~800만원이었던 아파트 시세가 1,200~1,300만원으로 급상승한 사실은 이 시점에서 정부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보금자리주택 건설 입찰방식이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 방식이라는 것이다. 선대인 부소장은 "턴키방식은 재벌급 건설업체들이 담합해서 예를 들어 60억에 할 수 있는 사업을 95억원에 하는 방식으로 건설비용을 늘리는 방식"이라며 "무주택 서민들의 세금까지 포함된 정부예산으로 도시계획상의 치밀한 고려도 없이 투기를 조장하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월 대대적으로 폭로한 바와 같이 이미 4대강 사업의 턴키입찰 과정도 6대 대형건설업체들의 나눠먹기식, 뻥튀기 입찰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서민 보금자리 마련을 명목으로 최근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업체에 특혜를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투자 위한 분양 아닌, 거주 위한 장기 공공임대 확대가 해법"

정부는 이처럼 주거난 해소 및 부동산 투기를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분양을 큰 폭으로 늘리는 보금자리주택 마련을 대안으로 선정했는데, 여기서 정부가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국민임대주택과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장기 전세주택의 세입자들이 전월세 대란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례가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전체 주택의 20% 정도가 공공임대주택인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주거난을 겪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임대주택 공급 추이를 보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9만 7천여호에서 2007년 14만7천여 호로 급속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11만 7천호로 줄었고, 올해는 10만여호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수는 57만5천호로 총 주택수 1,379만호의 4.2%에 불과해 공공임대주택 보급이 활성화 된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제도와 관련, "국민임대주택 공급물량을 연 10만호에서 4만호를 줄인 것은 주거복지를 크게 후퇴시킨 것”이라며 "정부가 장기공공임대주택보다 공공분양주택 중심의 무늬만 주거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수도권의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 주택을 건설하면서, 정작 집을 살 돈이 없는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축소하는 것은 문제"라며 "평당 900~1,100만원 정도 소요되는 공공분양주택이나 5년 및 10년 임대 등 수익형 임대주택 중심의 보금자리주택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측은 "(분양 중심의 주택공급 정책은) 택지분양을 받은 건설업체와 주택분양에 당첨된 사람들에게 개발이익이 모두 집중되도록 함으로써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며 "이런 점에서 주택공급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공영개발 택지에서 공공부문이 공급하는 장기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장 국회, 이젠 연말맞이 입법로비까지 횡행하는구나 글로바꾸는세상2


국회가 정말 올해는 막장국회로 끝을 맞이하기로 작정했나 봅니다. 유례없는 예산안 날치기는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고, 이번에는 여야 보좌진들을 모아 스키장에서 '입법로비'를 한답니다.
아래 기사는 제가 속해 있는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가 단독보도한 기사입니다. 선배 이재진 기자가 기사 작성을 했고, 저는 취재만 약간 도왔을 뿐인데 고맙게도 제 이름도 같이 올라와 있네요 ^^;
원문은 민중의소리 홈페이지 http://www.vop.co.kr/A00000274960.html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태희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회장으로 있는 국회교통안전포럼이 '안전문화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포럼 소속 보좌진들을 초청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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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가면 스키강습이 공짜?
교통안전 포럼, 보좌진 상대로 1박2일 '로비성' 워크숍

                                                                                                                                                 

이재진, 강경훈 기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회장으로 있는 국회교통안전포럼이 '안전문화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포럼 소속 의원 보좌진들을 초청해 무료 스키 강습을 실시하기로 하는 등 '로비성 워크숍'을 실시하기로 해 물의를 빚고 있다.

<민중의소리>가 입수한 '국회교통안전포럼 참여 의원 보좌진 안전문화 워크숍 참석 요청' 공문에 따르면 국회교통안전포럼은 포럼 소속 보좌진 5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받아 11일부터 12일까지 강원도 원주시 소재의 H 리조트에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워크숍이야, 연말 모임이야

하지만 워크숍의 대부분 프로그램은 친교시간, 스키장 자유시간으로 채워져 있어 안전문화 만들기라는 워크숍 취지 자체를 무색케 하고 있다.

공문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11일 저녁 8시 리조트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밤 9시부터 2시간동안 '포럼 활동 안내'를 주제로 워크숍을 연다. 이후 밤 11시부터는 '친교 시간'을 갖게 돼 있다. 다음날 12일에는 아침 8시부터 2시간동안 워크숍을 개최한 뒤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자유시간으로 스키장을 이용한다. 1박 2일 동안 워크숍은 4시간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워크숍 참가시 드리는 혜택'으로 ▲숙박 및 식사(3식) ▲스키 리프트권(59,000원 상당)및 스키 장비 일체 무료 대여 ▲스키 초보자에 대하여 강습실시 ▲자료집 및 기념품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공문상으로 보면 무늬만 워크숍이고 실제로는 '보좌진 연말 모임'이나 마찬가지다.

포럼에 소속된 야당 쪽 한 보좌진은 "보좌진들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업무에 벗어난 과도한 혜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키장이 무료

(좌)워크샵 참석 요청서에는 임태희 노동부장관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우)참석자들은 스키장 이용료가 무료다.ⓒ 민중의소리


워크숍 개최 비용도 불분명

워크숍의 지원 예산도 문제가 많다. 보통 국회 산하 연구지원 단체는 국회 의정연수원으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지만, 여야 의원 69명으로 구성된 국회교통안전포럼은 국회 공식 연구단체가 아니다.

의정연수원 관계자는 "교통안전포럼은 국회의원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59개의 국회 산하 공식 연구단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예산을 지원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보통 연구단체의 평균 예산은 1년에 2천만원 정도인데, 회의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책자를 발행하는 데도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1박 2일동안 워크숍을 할 정도라면 후원을 받거나 자체 회원비를 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재결과 이번 워크숍 비용은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에서 후원 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실련은 지난 96년 창립해 노동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은 단체로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하에 결성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송자 전 연세대 총장, 김춘강 전 대한어머니회 회장이 공동대표로 있다.

안실련 측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스키를 타는 것은 저희가 비용을 대고, 숙박비, 특강 강사 이런 부분은 협회나 공단에서 협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실련 측은 "우리는 그냥 교통안전 쪽으로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해서 (협회나 공단이)비용을 지불했는데 보시는 입장에 따라서 곤혹스러울 정도의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구체적인 협회나 공단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안실련 측은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향후 입법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아시겠지만 왠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보좌진들이 안 온다. 그러다보니 저희가 출혈을 감수하면서 해야하지 않느냐. 그런 차원에서 겨울이기도 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입법을 위한 '합법적 로비활동'이라는 해명이지만 토론회나 세미나도 아니고, '워크숍이란 이름을 내걸고 불분명한 예산으로 스키장을 가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지적이 남는다.

안실련은 또한 행정안전부로부터 비영리민간단체 지원 대상에 올라 2007부터 올해까지 3년동안 수천만원을 지원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배정된 지원 금액은 2천 6백만원이다.

임태희 장관 측 "문제제기해 취소 조치 중"

워크숍을 주최한 임태희 의원실은 취재가 들어가자 당황한 모습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공문을 오후 늦게야 확인했다. 회장 이름으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며 "문제제기를 해서 취소하려고 조치 중"이라고 말했다.

'공문에 포럼 회장 직인이 찍혀있다'는 지적에 의원실 관계자는 "안실련 쪽에서 포럼 회장 직인을 가지고 있다"면서 "안실련이 오버해서 추진해 생긴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임 장관의 타입으로 이런 일을 할 분이 아니다. 문제제기를 해서 취소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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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웃기는 노릇이죠? 워크숍을 주관하는 안실련은 행안부에서 일년에 2800만원을 지원받는답니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죠. 안실련이야 뭐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이사로 있는 대표로 있는 곳이니깐 돈줄은 끊기지 않겠죠. 그만큼 후원금이 많이 들어올 겁니다. 그래서 정부 예산을 많이 받지 않아도 잘만 돌아가는 곳이겠죠.

그래도 국민 세금 아니라고 막 써도 되는 건 아니죠. 명실상부하게 공익 실현을 내세우는 비영리 단체로서 이런 호화 입법로비를 저지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짓거리라고 봅니다.

까고 말해서 교통안전법 이런거 만드는 데 로비가 필요하나요? 쟁점 법안도 아니고,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통과시키는 데 야당이 태클을 걸겠어요? 연말도 됐으니 그냥 한번 놀아보자는 것 아닙니까 ㅡㅡ;
국회의원 보좌진 50명 스키장 공짜로 보내는데 두당 최소한 십오만원 씩 최소 천만원은 훌쩍 넘겠네요. 그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돈 아니겠죠.

그런데 곱씹어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들 가운데 무료급식, 경로활동 등을 주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티끌만한 정부예산 받아서 몇푼 안 되는 후원금 보태 근근히 운영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무료급식 비영리단체 관계자 한분과 지난해 학교 과제 때문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한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해주고 싶어도 못한다"...안실련, 뭐 느끼는 거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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